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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업데이트: 2026년 1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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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기예르모 델 토로 프랑켄슈타인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그냥 흘려보낼 생각이었습니다. 넷플릭스에서 틀어놓고 딴짓 하려다가 도입부 북극 장면에서 손을 멈췄습니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신작 '프랑켄슈타인'은 200년 넘은 원작을 꺼내들고도 전혀 낡아 보이지 않는 영화입니다. 영상미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그리고 창조자와 피조물 사이의 관계를 깊이 생각해보고 싶은 분들이라면 시간이 아깝지 않을 작품입니다.

영상미 — 넷플릭스로 봤는데도 압도된 이유

미장센(mise-en-scène)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화면 안에 배치된 모든 시각적 요소, 즉 조명, 색채, 배우의 위치, 소품까지 의도적으로 구성하는 연출 방식을 뜻합니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이 미장센 하나만큼은 동시대 감독 중에서 손에 꼽힐 정도라는 평가를 받는데, 이번 작품에서도 그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했습니다.

저는 영화관이 아닌 넷플릭스 화면으로 봤음에도 입을 다물지 못하는 장면들이 연속으로 나왔습니다. 북극의 빙판을 배경으로 한 도입부는 푸른 빛과 회색이 절묘하게 섞여 있었고, 빅터의 어린 시절이 나오면서 19세기 귀족 저택의 따뜻한 호박색 조명이 이어집니다. 그리고 실험이 이루어지는 철탑 내부는 다시 어둡고 기괴한 분위기로 전환되면서 보는 사람의 심리 상태까지 색감 하나로 조종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마치 전성기의 팀 버튼 감독 작품에서 느껴지던 그 포스라고 해야 할까요.

그로테스크(grotesque)한 미학, 즉 기괴하고 불쾌하지만 동시에 눈을 떼기 어려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스타일은 델 토로 감독의 트레이드마크입니다. 시체들이 결합된 크리처의 신체, 봉합 자국과 뒤틀린 피부가 스크린을 채울 때 혐오감보다 묘한 경이로움이 먼저 밀려왔습니다. 영화관에서 보지 못한 점이 진심으로 후회될 정도였고, 이런 작품은 큰 화면에서 봐야 한다는 걸 다시 한번 실감했습니다.

색채 대비와 의상 고증만으로도 상당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이 영화가 단순히 공포 장르라고 분류되는 건 아쉬운 일입니다. 영국영화협회(BFI)의 Sight & Sound에서도 델 토로 감독의 시각적 언어에 대한 평가는 오랫동안 높게 유지되어 왔는데, 이번 작품은 그 연장선에서 충분히 이해가 가는 결과물이었습니다.

액자구성 — 2시간 반이 짧게 느껴진 이유

러닝타임이 2시간 반이라는 말을 듣고 살짝 망설였습니다. 그런데 막상 보고 나니 전혀 길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는데, 그 비결은 영화가 채택한 액자식 구성(frame narrative)에 있었습니다. 액자식 구성이란 하나의 이야기 안에 또 다른 이야기가 포함되는 서술 방식으로, 쉽게 말해 이야기 속 이야기가 전개되는 구조입니다.

영화는 1857년 북극 탐험 장면으로 시작해 부상당한 빅터 프랑켄슈타인을 만나는 것으로 문을 엽니다. 그리고 빅터의 회상으로 들어가 그가 어떻게 크리처를 만들었는지를 보여준 다음, 다시 크리처의 시점으로 넘어가 그가 탑을 탈출한 뒤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따라갑니다. 이 구조 덕분에 SF, 스릴러, 전기적 요소가 자연스럽게 뒤섞이면서 지루할 틈이 없었습니다.

제가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챕터 2, 크리처의 이야기 부분이었습니다. 크리처가 눈먼 노인과 함께 글을 배우고, 스스로의 기원을 찾아가는 과정은 거의 성장 드라마에 가까웠습니다. 빅터의 시각에서 보면 단순한 실패작이었던 존재가, 크리처의 시각에서 보면 고독과 공허함을 온몸으로 감당해온 한 개체로 완전히 다르게 보이기 시작하는 거죠. 이 전환의 순간이 영화에서 가장 힘 있는 지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원작 소설 '프랑켄슈타인'은 1818년 메리 셸리가 출판한 작품으로, 최초의 SF 소설로 거론될 만큼 문학사적 가치가 높습니다. 메리 셸리는 18세에 집필을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 소설에서도 이미 액자식 구성이 사용되었습니다. 감독이 원작의 이 구조를 그대로 영화에 살린 건 단순한 복제가 아니라 원전에 대한 존중처럼 느껴졌습니다. 델 토로 감독이 왜 이 소재를 택했는지, 영화를 보고 나면 자연스럽게 이해가 됩니다.

이 영화가 잘 만들어진 이유를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1. 북극 도입부에서 관객의 시선을 즉시 붙잡는 긴장감 있는 오프닝
  2. 빅터와 크리처, 두 시점을 교차하면서 같은 사건이 완전히 다르게 보이는 서술 구조
  3. 2시간 반 내내 색채와 미장센으로 감정선을 조율하는 시각적 일관성
  4. 창조자와 피조물,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계를 흐리는 철학적 질문

이 네 가지가 맞물리면서 영화는 단순한 공포물이 아닌, 보고 나서도 한동안 생각을 붙잡아두는 작품이 됩니다.

엘리자베스 — 아쉬움이 남는 캐릭터 설계

영화를 다 보고 나서 한 가지 아쉬움이 계속 머릿속에 걸렸습니다. 그 부분이 바로 엘리자베스라는 인물입니다. 이건 저만 그런 건지 모르겠는데, 엘리자베스가 크리처에게 급속도로 감정을 가지게 되는 과정이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았습니다.

캐릭터 아크(character arc)란 이야기 안에서 한 인물이 경험을 통해 변화하거나 성장하는 과정을 뜻합니다. 설득력 있는 캐릭터 아크를 위해서는 그 변화를 유발하는 내적 동기나 배경이 충분히 제시되어야 합니다. 엘리자베스는 흉측한 외모의 크리처를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깊은 연민과 애정을 보이는데, 그 감정이 어디서 왔는지를 영화는 충분히 설명하지 않습니다.

~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이 부분이 단순히 '좋은 사람은 외모 너머를 본다'는 메시지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다고 봅니다. 엘리자베스가 어떤 고독이나 결핍을 안고 살아왔는지, 기존의 인간 관계에서 어떤 상처를 입었는지가 먼저 보여졌다면 그 감정이 훨씬 자연스럽게 전달되었을 겁니다. 반면 눈먼 노인이 크리처를 친구로 받아들이는 장면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지만 뛰어난 청력과 오랜 경험으로 크리처의 존재를 먼저 눈치챘고, 그가 자신들을 몰래 보살펴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마음을 여는 과정이 설득력 있게 다가왔습니다.

내러티브 일관성(narrative consistency), 즉 이야기 안에서 인물의 행동과 감정이 앞뒤로 맞아 떨어지는 정합성은 관객이 영화에 몰입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합니다. 엘리자베스 캐릭터에서 이 부분이 흔들린 건, 영화 전체의 완성도를 생각하면 아쉽지 않을 수 없습니다. 로저 이버트 사이트(RogerEbert.com)에서도 이 영화 리뷰에서 캐릭터 개발의 균형 문제를 언급하고 있는데, 저 역시 같은 지점에서 걸렸습니다.

물론 이것이 영화 전체를 흔드는 결함이라고까지는 보지 않습니다. 빅터와 크리처라는 두 축이 워낙 단단하게 이야기를 지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엘리자베스가 조연이 아닌 이야기의 중요한 분기점을 만드는 인물임을 감안하면, 조금 더 공을 들였다면 영화가 한 차원 더 깊어졌을 거라는 생각은 지울 수 없습니다.

결국 기예르모 델 토로의 '프랑켄슈타인'은 창조자와 피조물이 서로를 파괴하면서도 끝에서는 이름을 부르며 용서하는 이야기입니다. 영상미와 구성만 따지면 근래 본 영화 중 상위권에 들 만큼 완성도가 높습니다. 엘리자베스 캐릭터에 대한 아쉬움은 남지만, 그것이 이 영화를 안 봐도 된다는 이유가 되지는 않습니다. 공포나 SF에 관심이 없더라도 시각적 경험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작품입니다. 원작 소설을 먼저 읽어보고 싶어진다면, 그건 이 영화가 제대로 된 역할을 한 것이라고 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