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을 저지른 남자가 주인공인 영화를 끝까지 보게 만드는 힘이 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요.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의 1997년 작품 '우나기'를 처음 켰을 때 저도 그 질문을 품은 채 화면을 바라봤습니다.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Palme d'Or)을 받은 작품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솔직히 첫 장면의 온도 차이에 당황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이마무라 쇼헤이와 황금종려상, 그 무게감
황금종려상(Palme d'Or)이란 칸 국제영화제에서 수여하는 최고 영예의 상입니다. 전 세계 영화인이 가장 받고 싶어 하는 트로피 중 하나로, 이마무라 쇼헤이 감독은 이 상을 두 차례나 품에 안았습니다. 1983년 '나라야마 부시코'에 이어 1997년 '우나기'로 수상했으니, 같은 감독이 두 번 황금종려상을 받은 것은 영화사에서도 극히 드문 일입니다.
이마무라 감독은 일본의 뉴웨이브(New Wave) 세대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꼽힙니다. 뉴웨이브란 1950~60년대 프랑스를 필두로 세계 각지에서 일어난 영화 운동으로, 기존 상업 영화의 문법을 거부하고 인간의 날것 그대로의 본성을 카메라에 담으려 했던 흐름입니다. 이마무라는 그 정신을 일본 사회의 하층민과 소외된 인물들에게 집중하는 방식으로 구현했고, '우나기' 역시 그 연장선에 있습니다.
이런 감독의 필모그래피를 알고 보면 '우나기'가 단순한 출소자 드라마가 아님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제가 이 영화를 보기 전에 감독의 이력을 먼저 찾아봤는데, 그 배경 지식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꽤 크다고 생각합니다. 모르고 보면 "왜 이렇게 밋밋하지?"라는 느낌이 들 수 있거든요.
참고로 칸 영화제 공식 황금종려상 수상 기록은 칸 국제영화제 공식 사이트에서 직접 확인할 수 있습니다.
줄거리 — 살인 이후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영화는 1988년 여름, 평범한 회사원 야마시타의 일상으로 시작합니다. 그는 익명의 편지 한 통을 받는데, 자신이 낚시를 나간 밤마다 아내가 외도를 하고 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낚시를 핑계로 일찍 귀가한 야마시타는 그 광경을 직접 목격하고, 충동적으로 아내를 칼로 찔러 살해합니다. 그리고 온몸에 피를 뒤집어쓴 채 스스로 경찰서에 걸어 들어갑니다.
8년의 복역 후 가석방된 야마시타는 교도소에서 혼자 키우던 장어 한 마리를 돌려받습니다. 그는 외딴 시골 마을에서 이발소를 열고, 마을 사람들과 최대한 거리를 두며 지냅니다. 사람과는 눈도 잘 마주치지 않는 야마시타가 유일하게 말을 거는 상대가 바로 그 장어입니다. 여기서 장어는 단순한 반려동물이 아니라 야마시타의 내면 그 자체를 상징하는 오브제(objet)로 기능합니다. 오브제란 영화나 문학에서 인물의 심리 상태나 주제를 시각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사용하는 사물을 가리킵니다.
그러던 중 야마시타는 풀숲에서 쓰러진 여자를 발견합니다. 케이코라는 이름의 이 여자는 약을 먹고 자살을 시도한 상태였습니다. 케이코는 이후 야마시타의 이발소에서 일하게 되고, 외모마저 죽은 아내와 닮았다는 이유로 야마시타는 그녀에게 더욱 마음의 문을 닫습니다.
케이코를 둘러싼 사연도 만만치 않습니다. 도지마라는 남자가 그녀의 어머니 재산을 노리고 접근했고, 그 과정에서 케이코와 얽히게 되었습니다. 도지마의 아이를 임신한 케이코는 어머니를 정신병원에서 빼내고 빼앗긴 돈을 되찾아오는데, 분노한 도지마가 야마시타의 이발소에 난입해 소동을 벌이면서 영화는 다시 격렬한 국면으로 접어듭니다.
결말에서 야마시타는 도지마에게 가위를 휘둘러 1년 재수감을 받게 됩니다. 그는 마을을 떠나기 전, 줄곧 곁에 두었던 장어를 강에 놓아줍니다. 그리고 케이코에게 "1년 뒤에 돌아와서 아이를 함께 키우자"고 말합니다. 구원이라고 부르기엔 아직 불완전하지만, 처음으로 타인을 향해 손을 내미는 장면이었습니다.
야쿠쇼 코지의 연기 — 부서진 사람을 연기하는 방식
솔직히 이 영화를 끝까지 볼 수 있었던 건 야쿠쇼 코지 덕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초반의 충격적인 장면 이후 영화는 한동안 일상극(日常劇)에 가깝게 흘러가는데, 서사적 긴장감이 거의 없는 그 구간을 버티게 해주는 것이 야쿠쇼 코지의 얼굴이었습니다.
야쿠쇼 코지는 이 영화에서 절제 연기(minimalist acting)의 정수를 보여줍니다. 절제 연기란 감정을 과장하거나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미세한 표정과 몸짓의 변화만으로 내면을 전달하는 연기 방식입니다. 야마시타는 거의 웃지 않고, 거의 울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그의 화면 안에는 죄책감과 고독, 그리고 조금씩 스며드는 인간적 온기가 느껴집니다.
제가 특히 인상 깊었던 장면은 야마시타가 장어에게 혼자 말을 걸 때입니다. 대사 자체는 짧고 단조롭지만, 그 장면에서만큼은 야마시타가 아닌 야쿠쇼 코지라는 배우의 밀도가 느껴졌습니다. 겉으로는 평온하지만 속은 완전히 부서진 사람. 그걸 스크린 앞에서 "자연스럽게" 해낸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다른 배우들의 비슷한 역할과 비교해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야쿠쇼 코지는 이후에도 '철도원', '바빌론', '퍼펙트 데이즈' 등에서 꾸준히 국제적인 인정을 받았는데, '우나기'는 그 경력의 중요한 기점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일본 영화에서 야쿠쇼 코지가 갖는 위상에 대해서는 IMDb 야쿠쇼 코지 페이지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영화, 어떻게 봐야 할까 — 아쉬운 점과 남은 여운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제가 가장 먼저 든 생각은 "톤이 너무 다르다"는 것이었습니다. 초반의 살인 장면은 매우 직접적이고 날것 그대로여서 보는 내내 불편했는데, 이후 전개는 조용한 시골 마을의 일상극으로 급격하게 전환됩니다. 이 낙차가 의도된 연출임을 알면서도, 처음 볼 때는 당황스러웠던 것이 솔직한 반응이었습니다.
미장센(mise-en-scène) 측면에서는 흥미로운 선택들이 많습니다. 미장센이란 화면 안의 모든 시각적 요소, 즉 인물의 배치, 조명, 소품, 공간 구성 등을 종합적으로 설계하는 영화 제작 개념입니다. 이마무라 감독은 야마시타가 고립된 공간 안에 있을 때 카메라를 멀찍이 두고, 케이코와 가까워질수록 조금씩 거리를 좁히는 방식을 택합니다.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그의 심리 변화가 화면에 새겨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다만 케이코의 캐릭터 설정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자살 시도를 했던 인물이 낯선 야마시타에게 빠르게 강한 애착을 형성하는 과정이 좀 더 설득력 있게 그려졌으면 어땠을까 싶었습니다. 케이코의 상처가 충분히 소화되지 않은 채 야마시타의 회복 서사를 지탱하는 도구로 활용된 면이 있다고 느꼈거든요.
'우나기'를 보기 전에 알아두면 좋을 포인트를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초반 약 10분의 강렬한 장면 이후 영화의 속도는 크게 느려집니다. 이것이 지루함이 아닌 의도적인 호흡임을 염두에 두면 훨씬 잘 읽힙니다.
- 장어는 단순한 소품이 아니라 야마시타의 내면을 반영하는 상징적 오브제입니다. 그가 장어를 어떻게 대하는지를 주목하면 서사의 변화가 더 잘 보입니다.
- 야쿠쇼 코지의 연기는 큰 감정 표현 없이 진행되므로, 그의 눈빛과 침묵에 집중하면 영화가 훨씬 풍부하게 보입니다.
- 이마무라 쇼헤이의 다른 작품인 '나라야마 부시코'를 먼저 보고 오면 이 감독의 연출 언어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우나기'는 쉽게 소화되는 영화가 아닙니다. 구원을 깔끔하게 포장하지 않고, 인물을 단죄하거나 두둔하지도 않은 채 그저 담담하게 바라봅니다.